티스토리 뷰
가수 故김현식은 대한민국 가요역사에 손에 꼽는 레전드이며 한국의 언더 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상직적인 인물입니다.
가수 故김현식은 1958년생이며 1990년에 향년 32세에 별세하였습니다. 이의 사망 이유를 이야기 하기전에 과거 어릴적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김현식은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어느정도 성공을 이루었으며 집안 배경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굉장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으며 보성중학교에 입학하며 이때 처음으로 기타를 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던 성적은 조금씩 하락하였습니다.
이후 명지고등학교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였는데 선배의 악기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크게 싸웠으며 밴드부에서 탈퇴를 당하고 고등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가족들 몰래 자퇴서를 내며 검정고시 학원을 다녀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김현식은 이후에 공부는 하지 않고 음악에 빠져들며 종로에 있는 한 음악다방에서 DJ를 찾아가 그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 DJ는 가수로 나가라며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였습니다. 음악다방의 DJ는 개그맨 전유성 이었습니다.
이후 김현식은 1집 앨범을 녹음을 해놓았지만 대마초 문제로 진전은 없었습니다.
이후 1980년 자신의 이름을 걸은 데뷔 앨범 1집 앨범에도 실패해 버리면서 담배와 술에 매달리며 지내게 되며 1982년에 결혼을 하며 김현식의 사랑하던 아들 김완제를 얻었습니다.
이후에도 굴하지 않고 밤무대 가수활동을 하면서 1984년에 2집 사랑했어요를 발매하며 대성공을 거두며 가수 김현식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3집 비처럼 음악처럼도 상업적인 성공과 호평을 받았지만 이후 1987년에 다시 대마초를 흡연하다가 적발되어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음반의 실패로 인해 자주 술을 마셨으며 이 문제 때문에 김현식의 건강에는 간경화라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후 결국에 1990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자신과 계약했던 동아기획 김영 사장에게 밝은 목소리로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 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이 전화 이후 2시간만에 김현식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본인이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있던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현식은 세상을 떠난 이후 유작이 된 내 사랑 내곁에도 대박 성공을 이루며 이 당시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받았습니다. 11월에는 연예인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11월에 많은 연예인들이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맘때 쯤이면 생각이 나기도 하지요.
故김현식이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많은 후배들에게 재해석되어 리메이크가 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